탈모는 유전 때문만은 아니다: 막거나 늦출 수 있다
"탈모가 유전 때문에 생긴 것 같은데, 이건 어쩔 수 없나요?"
진료실에서 가장 흔하게 듣는,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말 중 하나입니다. 많은 분들이 탈모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사실 앞에서,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체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현대 과학은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바로 유전자가 우리의 운명을 100%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1. 일란성 쌍둥이 연구가 말해주는 진실
만약 탈모가 전적으로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면, 유전 정보가 100%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는 탈모가 시작되는 시기, 진행 속도, 그리고 탈모의 형태까지 모든 것이 똑같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쌍둥이 연구에서 탈모에 대한 중요한 사실들이 밝혀졌습니다.
- 불일치하는 탈모 패턴: 연구 결과, 일란성 쌍둥이라 할지라도 한 명은 심한 탈모를 겪는 반면, 다른 한 명은 탈모가 없거나 매우 경미한 경우가 상당수 관찰되었습니다. 이는 유전자가 동일하더라도,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생활 습관이 탈모의 발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 치료의 효과: 탈모가 있는 일란성 쌍둥이 중 한 명은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고, 다른 한 명은 치료를 받지 않았을 때 그 경과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치료를 받은 쌍둥이는 모발 상태가 개선되거나 현상을 유지한 반면, 치료를 받지 않은 쪽은 탈모가 계속해서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유전적 소인이 있더라도,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충분히 그 경과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쌍둥이 연구들은 우리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유전자는 '설계도'일 뿐, 그 설계도대로 건물이 지어질지, 언제, 어떻게 지어질지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
그렇다면 유전자 외에 탈모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은 어떻게 작용하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후성유전학(Epigenetics)'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후성유전학은 우리의 DNA 서열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우리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환경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특정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거나(발현되거나) 꺼질(억제될) 수 있다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당신이 탈모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그 유전자는 평생 잠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후천적인 요인들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면, 잠자고 있던 탈모 유전자의 '스위치'가 'ON' 상태로 켜지게 됩니다.
- 두피의 만성 염증: 지루성 피부염, 모낭염 등
- 영양 불균형: 철분, 아연, 비타민D 등의 결핍
- 과도한 또는 지속적인 스트레스: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의 영향
- 수면 부족: 성장 호르몬 분비 저하 및 신체 회복 능력 감소
- 흡연 및 음주: 혈액순환 저하 및 산화 스트레스 증가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이러한 부정적인 요인들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개선해 나간다면, 이미 켜진 스위치의 '볼륨'을 줄이거나, 아직 켜지지 않은 스위치가 켜지는 것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3. 당신은 당신 유전자의 '지휘자'입니다
"유전자는 총알을 장전할 뿐,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생활 습관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탈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탈모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체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불리한 출발선에 서 있다는 의미일 뿐, 결코 결승선이 정해진 경주가 아닙니다.
두피 건강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며,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충분한 잠을 자는 등의 노력을 통해 우리는 유전자라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인 치료를 병행한다면, 우리는 유전자의 연주 방향을 바꾸고 탈모의 진행을 막거나 늦추며, 심지어는 잃어버렸던 모발의 건강을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 탈모는 유전 때문'만'이 아닙니다. 당신의 노력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관리 가능한 질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