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두피 섬유화(Fibrosis) 부위에 모발이식을 권하지 않는 이유
"원장님, 탈모가 너무 오래돼서 그런지 두피가 딱딱해졌는데, 여기에도 머리를 심을 수 있을까요?"
탈모 치료의 마지막 희망으로 모발이식을 고려하는 환자분들, 특히 탈모가 상당히 진행된 분들께 이러한 질문을 받곤 합니다. 만져보기만 해도 건강한 두피와는 다른, 단단하고 탄력 없는 느낌. 이는 '두피 섬유화'가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저는 이러한 두피에는 모발이식을 섣불리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식의 성공률과 직결되는 두피의 근본적인 환경 문제 때문입니다.
1. 두피 섬유화(Fibrosis)란 무엇인가?
두피 섬유화란, 우리 두피가 본래 가지고 있던 부드럽고 유연한 특성을 잃고, 비정상적으로 많은 콜라겐 섬유가 쌓여 딱딱하게 굳어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피부에 깊은 상처가 난 후 아물면서 생기는 단단한 '흉터 조직'과 매우 유사한 상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건강한 두피는 혈관이 풍부하게 분포하고, 모낭들이 충분한 공간과 영양을 공급받으며 뿌리내릴 수 있는 비옥한 토양과 같습니다. 하지만 섬유화가 진행된 두피는 수분과 영양분이 메마르고 돌처럼 굳어버린 척박한 땅과 같습니다. 모낭이라는 씨앗을 심어도 제대로 뿌리내리고 자라기 힘든 환경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2. 두피 섬유화는 왜, 어떻게 생기는가?
두피가 이렇게 단단한 흉터 조직처럼 변하는 데에는 몇 가지 주요 원인이 있습니다.
- 장기간 지속된 만성 염증: 지루성 피부염, 아토피 피부염, 심한 모낭염과 같은 염증성 질환을 오랫동안 방치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염증이 생기고 회복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우리 몸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콜라겐 섬유를 만들어냅니다. [cite: 1165] 하지만 이 과정이 만성적으로 지속되면 콜라겐이 과도하게 생성되고 무질서하게 쌓여 결국 두피 조직 전체를 단단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 오래된 유전성 탈모: 남성형/여성형 탈모가 10년, 2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경우에도 섬유화가 동반됩니다. 탈모 유전자의 영향으로 모낭이 점차 작아져 소멸하면, 모낭이 있던 빈자리가 점차 섬유 조직으로 대체됩니다. 또한, 모발이 사라지면서 두피의 혈액순환이 전반적으로 저하되고 피부 두께가 얇아지면서 탄력을 잃고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 외상 및 기타 요인: 머리에 입은 화상이나 깊은 상처가 아물면서 생긴 흉터, 또는 특정 피부 질환(예: 반흔성 탈모)에 의해서도 국소적인 섬유화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3. 척박한 땅에는 씨앗이 자랄 수 없습니다: 섬유화 두피에 이식을 권하지 않는 이유
그렇다면 왜 이처럼 단단해진 두피에는 모발이식을 추천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째, 이식된 모낭의 생존율, 즉 '생착률'이 현저히 낮습니다. 모발이식의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혈액순환'입니다. 새롭게 이식된 모낭은 주변의 미세혈관으로부터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아야만 살아남아 새로운 머리카락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섬유화된 두피는 빽빽하게 쌓인 콜라겐 조직이 혈관을 압박하여 혈액 공급 자체가 매우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척박한 땅'에 모낭을 옮겨 심는 것은, 물도 영양분도 없는 사막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식된 모낭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분조차 공급받지 못하고 결국 대부분 괴사하여 탈락하고 맙니다. 높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어렵게 이식을 진행하더라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힘든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둘째, 시술 자체가 어렵고 부자연스러운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기술적으로도 섬유화된 두피는 이식에 불리합니다. 단단한 두피에 모낭이 들어갈 구멍(슬릿)을 만들기가 어려울뿐더러, 원하는 깊이와 각도를 정확히 맞춰 심는 것이 힘듭니다. 이는 모낭 손상률을 높일 수 있으며, 설령 일부 모낭이 생착에 성공하더라도 딱딱한 피부 위에서 자라는 머리카락은 주변 모발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셋째,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모발이식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상처와 염증 반응이, 가뜩이나 과민한 섬유화 조직을 자극하여 염증을 심화시키고 섬유화를 더욱 촉진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두피 섬유화가 관찰되는 환자분께는 모발이식을 서두르기보다, 우선적으로 두피의 염증을 치료하고 혈액순환을 개선하여 딱딱해진 두피를 부드럽게 만드는 치료를 선행할 것을 권장합니다. 두피라는 토양을 먼저 건강하게 만든 후에야, 모발이식이라는 씨앗이 비로소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