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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탈모와 모발이식

원형탈모에 모발이식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 | 자가면역질환의 이해

3장: 원형탈모 환자에게 모발이식을 권하지 않는 이유

탈모 치료 과정에서, 특히 갑작스럽게 찾아온 원형탈모로 고통받는 환자분들로부터 "차라리 이 부분에 모발이식을 하면 안 될까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비어있는 두피를 보면 당장이라도 머리카락으로 채우고 싶은 그 절박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저는 원형탈모 환자분들께는 모발이식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이는 단순히 효과가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원형탈모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원형탈모의 본질: 내 몸이 나의 모낭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

일반적인 유전성 탈모가 모낭 자체가 서서히 약해지는 '노화' 과정에 가깝다면, 원형탈모는 우리 몸의 방어 시스템인 '면역체계'에 혼란이 생겨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입니다. 원래 면역체계는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는 아군입니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로 이 면역체계가 오작동을 일으켜, 멀쩡한 우리 몸의 일부를 적으로 오인하고 공격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원형탈모는 바로 이 공격 대상이 우리 머리카락을 만드는 '모낭'이 된 경우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면역세포의 일종인 T-림프구가 성장기 모낭 주변으로 몰려들어 모낭을 외부 침입자로 착각하여 집중 공격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이 공격으로 인해 모낭 주변에 염증이 발생하고, 정상적인 성장 주기를 이어가던 모낭은 큰 충격을 받아 갑작스럽게 퇴행기나 휴지기로 넘어가 버립니다. 그 결과, 아직 수명이 다하지 않은 머리카락이 한꺼번에 우수수 빠져나가면서 동전 모양처럼 해당 부위가 휑하게 비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즉, 원형탈모는 모낭 자체가 약해지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라, 두피 아래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염증 반응 때문에 머리카락이 일시적으로 자라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터에 씨앗을 심는 격: 원형탈모에 이식이 무의미한 이유

이러한 원형탈모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왜 모발이식이 해결책이 될 수 없는지 명확해집니다.

  • 첫째, 이식한 모발도 다시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원형탈모 부위는 면역세포들이 모낭을 공격하고 있는 '전쟁터'와 같습니다. 이러한 염증 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두부의 건강한 모낭을 옮겨 심는다고 해도, 면역세포들은 이 새로운 모낭마저 적으로 간주하고 똑같이 공격할 것입니다. 결국 어렵게 심은 모발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생착 실패)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빠져버리는 허무한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둘째, 이식 과정 자체가 원형탈모를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모발이식은 두피에 수많은 미세한 상처를 내는 외과적 시술입니다. 건강한 두피라면 자연스럽게 회복되겠지만, 면역체계가 과민한 원형탈모 환자의 경우 이 상처와 자극이 오히려 면역세포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염증을 심화시키거나, 멀쩡했던 다른 부위에 새로운 원형탈모를 유발하는 '쾨브너 현상(Koebner phenomenon)'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즉, 머리카락을 심으려다 오히려 더 넓은 부위의 머리카락을 잃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형탈모의 치료는 비어있는 곳을 채우는 외과적 접근이 아닌, 두피 아래의 염증을 가라앉히고 비정상적인 면역반응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내과적 접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과민한 면역체계를 안정시키는 치료를 통해 '전쟁터'를 '평화로운 땅'으로 바꾸어 주면, 모낭은 스스로 다시 건강한 머리카락을 길러낼 힘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